문예지발표작

모래로부터 먼지로부터/장석원

자크라캉 2006. 7. 6. 14:31

   

 

 

                                   사진<다빈치>님의 플래닛에서

 

 

래로부터 먼지로부터 / 장석원

 

 

 

    천원 한 장을 구걸하는 남자

    떠오르는 돌멩이 같은 비들기들

 

    처음 와본 곳 같다

    어떤 명령에 의해 걸음을 멈추었을까

    뒤를 돌아본다 움푹 패어 있다

    한움큼 뽑혀나간 듯하다

 

    광장은 쪼개지는 곳

    바람이 그러하듯

    광장은 중심을 지니지 않는다

    바람과 햇빛, 습도와 명암까지 똑같다

 

    지루하고 무한한 한 번의 삶이었지만

    걸인이기도 하고 한그루 나무이기도 하고

    첨탑에 걸린 구름이기도 하지만

    지워진 얼굴로 여기까지 걸어왔지만

 

    횡단하는 비둘기로 가득 찬 하늘 밑에서

    잠을 생각한다, 사랑의 복습을 꿈꾼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또한 아무것이기도 했다

 

    서울역 광장의 남측면에 자리잡은 매점 앞

    여섯시의 저무는 태양 아래

    나는 가만히 서 있다

 

    라디오에서 시보가 흘러나온다

    라디오는 모든 것을 삼킨다

    배스킨 라빈스, 일요신문,비보이, 달라이라마, KTX,해양수산부,아메

리카 인디언, 결혼반지, 모더니즘, 야전교범,북악터널, 아도르노, 우리

은행, 하이힐, 가창오리, 동호대교, 불심검문, 사발면, 개인택시, 콘돔,

멕시코 만류, 리더스 다이제스트, 콩코스, 옥수수, 무디 블루스, 서정주,

채털리 부인, 청약통장, 롯데리아, 문화상품권, 수유리, 벡스, 갤러리아,

코닥필름, 화계사, 동아운수, 잉여가치, 넥타이, 야간순찰, 라이터, 고르

끼, 남대문, 글러브, 안기부, 비정규직 철폐, 유모차, 스타벅스, 막스베버,

프리즘, 민노총, 반시대적 고찰......

    그리고 어느 금요일 저녁의 거리를 걸아갈 사람들

 

 

    코스닥지수가 흘러나오는 시간이다

    밤의 날씨와 모 베터 블루스가 이어진다

    비는 반드시 내리리라

 

 

 

    <창비> 2006년 여름호

 

 

     장석원

     1969년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나키스트>

     ultravox@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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