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개똥이>블로그에서
맨 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현대시학(2003년 8월호)
[감상]
시장에서 마주친 개조개의 살아있는 맨발을
보고, 열반에 든 부처님의
맨발을 연상해 내는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이 재미있습니다.
마지막 설법을 마친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먼 곳에서 가섭이 달려 오자 부처님은 관 밖으로 슬며시
두 발을 내밀어 보였다고 하지요.
팔상도(八相圖)의
'곽시쌍부(廓示雙趺)'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출가 이후 줄곧 맨발로 살아오신 부처님, 그 맨발은 세상을 주유하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입고, 펄 속에 담겨있어 부르터 있었을 겁니다.
개조개의 ‘맨발’도 집을 매달고 다니느라 많은 상처를
입었을 터이고,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잔뜩 부르터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배고픈 집이 아---하고 울 때 그 상처받은 ‘맨발’로 탁발하러
밖으로
나다녔을 것이며, 덕분에 집안의 식솔들은 주린 배를 채우고,
울던 울음도 뚝 그쳤을 겁니다.
서민들의 아픈 삶이
진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개조개 한 마리에서 부처를 보고, 세상을 보는 시인의 시선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릇
생명 있는 것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이와 같은 시를 낳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는 일은 늘 '맨발'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는 일“이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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