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랜드의 작은 공간>님의 플래닛에서
달팽이 / 정용화
풀잎 사이로 짐바리 자전거 한 대가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제 생애보다 더 ㅁ거운 짐을 싣고
느릿느릿 오후를 끌고 간다
노인이 자전거에 끌려가듯 보이지만
아니다, 바꿔서보면 자전거가
연신 노인의 굽은 등을 펴주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전거에 달려있는
두 개의 더듬이는 퇴화된 시력으로
노인의 길을 힘겹게 더듬고 있다
길은 납작하게 엎드려 있고
존재를 알리기 위해 피어난 꽃들은
길가로 비켜 서있다
노인의 온몸은 점액질로 축축하다
탱탱하던 근육도 사라지고
이제 낡고 힘없는 둥근 등은
끝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흙이 가까워 더 이상 내려다 볼 수 없는
낮고 축축한 저 발자국이
찾아가고 있는 어디쯤일까
꽃잎에서 다른 꽃잎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 한 마리
달려오던 차들의 속도가 잠시 물렁물렁해진다
정용화
충북 충주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자과 졸업
월간<시문학> 신인상
2006년 <대전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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