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당나귀처럼 / 정다운

자크라캉 2006. 5. 20. 10:21

 

                               

                                     사진<이쁜민들레>님의플래닛

 

 

나귀처럼 / 정다운

 

 

어떤 절망은 사소해질 것이라고 말하지 마라
모든 밤은 아침을 밟고 걸어온다
사내들의 구두코가 검은 것은
기름진 아침의 살점으로 늘 반들거리기 때문이다
자루는 신발방보다 크고 우리는 때로
그것을 소금으로 채울 만큼 약삭 빨라
물을 만나면 넘어져 일어나지 않았을 뿐
이를 딱딱 부딪히면 별들이 튀어오른다
하늘에 별이 떴다, 라고 말하면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 고약한 추위였다
자루는 천천히 흐물흐물해졌고 우리는 손을 들어
이토록 작고 가볍다고 흔들어댔다
당나귀처럼 헹헹 웃으면서
쭈그러든 절망을 팔러 갈 수 있었다
잔돈을 흔들며 돌아오는 길은
머리카락에 매달린 소금 알갱이들이 잘강이는 소리
바삭바삭한 밤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헹궈도 사라지지 않는 자루
저도 모르게 그 안에 솜을 쑤셔 넣고
물속에 드러누운 채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밤
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입술은 파랗고
거대한 자루 위에 누워 후회하는 밤
물 먹은 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모든 밤은 아침을 밟기 위해 걸어간다
우리는 때로 사소한 소금을 한 주먹 쥐고
여러 번 헹궈낼 수 있었을 뿐
어떤 절망도 결코 사소해지지 않는다

 

 

 

2005년 문예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