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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
니체
... 유기체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에고이즘을 성취하는데 실패한다면 유기체 전부가 퇴화하게
된다. 생리학자는 퇴화된 부분을 절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퇴화한 부분이 있어서는 전체로서의 결속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퇴화된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전체의 퇴화, 인류의 퇴화를 희망하는 무리들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그는 퇴화한
것을 보존한다. 이 대가로 그는 인류를 지배한다. 사람이 자기보존과 육신의 힘을 앙양하는 것 -- 말하자면, 생의 앙양 -- 에 온 정력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또한 빈혈증이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육신의 경멸이 영혼의 구제로 받아들여진다면, 이것은 바로 데카당스를 향한 하나의
처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심을 잃어버리고, 자연적인 본능에 대해 저항하는 것 -- 한마디로 자기상실 -- 이것이 바로 이제까지 도덕이라고
일컬어진 것이다. 나는 이 < 서광 > 으로서 처음으로 인간을 상실시키는 도덕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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