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충주호암지>
사과
/ 송찬호
여기 이 붉은 곳은 사과의 남쪽, 홍수의
개미들이 위태하게 건너가는 저 녹슨 철사줄은 사과의 적도, 그리고 물컹하게 썩어가는 여기 이 곳이 사과의
광대뼈
이제 허리 구부러진 저 늙은 사과나무의 무릎에서 사금을 캐지 말자 탈옥의 휘파람을 불지 말자 생의 달콤함을
훔쳐 달아나던 팔월의 사과도 저렇게 붉은 조끼 한 벌로 포박돼 가지 끝에 매달려 있으니
부카치카 부카치카,
벌판으로 달려와 허공으로 앞머리를 번쩍 쳐든 바람의 하모니카 여기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개망초 나라, 가쁜 숨을 헐떡이며 망촛대 몇 단
부러뜨려 침목으로 베고 누운 곳, 물 한그릇 떠놓을 성소조차 없는 이곳은 사과의 뒤편
여기쯤 파란대문이 서
있었겠다 이 문으로 사내들은 진귀한 낙타눈썹을 찾아 사막으로 떠나고 얼굴 검은 여자들이 태양의 분을 바르고 십리를 걸어 마마와 기근을 영접했겠다
그래도 여길 다시 한 번 보아라 돌로 쌓은 여뀌즙 사랑은 여전히 물고기눈을 찌르고 갈라진 시멘트 틈에서도 아이들은 분수처럼 솟고 천 일의 밤을
팔아 아침 한 때를 맞이하리니,
누군가 한 입 베어먹고 멀리 던져버린 여기는 사과의 궁전
<제21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서
송찬호 시인
1959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 경북대 독문과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 등
'수상작품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 낮잠 / 문태준 (0) | 2006.05.31 |
---|---|
빈집의 약속 / 문태준 (0) | 2006.05.31 |
우리집에 왜 왔니 / 이시하<제12회 정지용 문학상 당선자> (0) | 2006.05.16 |
입이 없는 돌 / 유안진 <`06년 제20회 소월문학상작품집 문학사상> (0) | 2006.03.30 |
미안하구나 / 송재학 <`05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0) | 2006.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