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사과 / 송찬호

자크라캉 2006. 5. 17. 17:24
 

                             

                             사진<충주호암지>님의 블로그에서

/ 송찬호


 여기 이 붉은 곳은 사과의 남쪽, 홍수의 개미들이 위태하게 건너가는 저 녹슨 철사줄은 사과의 적도, 그리고 물컹하게 썩어가는 여기 이 곳이 사과의 광대뼈


 이제 허리 구부러진 저 늙은 사과나무의 무릎에서 사금을 캐지 말자 탈옥의 휘파람을 불지 말자 생의 달콤함을 훔쳐 달아나던 팔월의 사과도 저렇게 붉은 조끼 한 벌로 포박돼 가지 끝에 매달려 있으니


 부카치카 부카치카, 벌판으로 달려와 허공으로 앞머리를 번쩍 쳐든 바람의 하모니카 여기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개망초 나라, 가쁜 숨을 헐떡이며 망촛대 몇 단 부러뜨려 침목으로 베고 누운 곳, 물 한그릇 떠놓을 성소조차 없는 이곳은 사과의 뒤편


 여기쯤 파란대문이 서 있었겠다 이 문으로 사내들은 진귀한 낙타눈썹을 찾아 사막으로 떠나고 얼굴 검은 여자들이 태양의 분을 바르고 십리를 걸어 마마와 기근을 영접했겠다 그래도 여길 다시 한 번 보아라 돌로 쌓은 여뀌즙 사랑은 여전히 물고기눈을 찌르고 갈라진 시멘트 틈에서도 아이들은 분수처럼 솟고 천 일의 밤을 팔아 아침 한 때를 맞이하리니,


 누군가 한 입 베어먹고 멀리 던져버린 여기는 사과의 궁전

 

 

<제21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서


 


 

                                     송찬호 시인

 

1959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 경북대 독문과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