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여기서 나는 본성에 있으되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 -- 예컨대 이상주의 -- 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켰다. 이
표제가 의미하는 바는 너희가 이상적인 것을 볼 때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본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인간을 잘 알고 있다.
더이상 나 자신에게 굴복한다든지,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낸다든지, 나 자신을 혼동하는 일에 대하여 나의 본능이 냉혹한
판단을 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떤 종류의 삶, 즉 최고의 악조건, 질병, 빈곤 등도 그 불쌍한 자기상실보다는 나아 보였다. 내가 자기상실의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무지나 젊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지나 젊다는 것 속에서 그렇게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집착하게 된 것은
타성이나 이른바 의무감에서였다.
바로 이때에 내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적시에
나의 아버지의 사악한 유전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그것은 단명이라는 나의 운명. 병이 나를 서서히 해방시켜주었다.
그것은 나를 어떤 사람과의 마찰이나 어떤 맹렬하고 도전적인 순간에서 구제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남으로부터의 호의를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이 얻었다. 또한 나의 병은 모든 나의 습성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즉 병은 나에게
망각을 허용하였고 명령하였다.
병은 나에게 조용히 누워있고 여가를 가지며 기다림과 인내의 필요성을 던져주었다. -- 그러나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곧 생각하낟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었다. 나의 눈만이 모든 책벌레라는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 간단히 말해서 <
뮌헨 > 잡지에서부터 해방된 것이었다. 나는 수년간 책이라는 것에서 해방되었고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한
최고의 은혜였다. 다른 자신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이것은 사실 또 하나의 독서를 의미했다.
끊임없는 중압감 속에서
파묻히고 침묵하여 있던 맨 밑바닥의 자아는 서서히 수줍어하며, 미심쩍어하면서 깨어났다. - 그리하여 결국 그 자아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병 속에서 시달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보다 내 생애 더 큰 기쁨을 느껴보지 못하였다. 나 자신에로의 회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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