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미artyunmi>님의 블로그에서
반시대적
고찰
네 편으로 된 < 반시대적 고찰 > 은 확실히 호전적인 면이 있다. 그것들은
내가 꿈꾸는 책이 아니라는 것, 내가 칼싸움을 좋아 한다는 것, 아마 내가 위험스러울 만치 칼 뽑는 데 재빠르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
첫번째 칼끝은(1873년) 내가 당시 그렇게도 경멸했던 독일적 교양을 향하고 있다. 독일적 교양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실체도 없으며 목표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여론에 불과한 것이다. 독일의 위대한 군사적 성공이 이 교양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든지, 무엇보다 독일적
교양이 프랑스를 제압했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유해한 오류는 없을 것이다.
두번째의 < 반시대적 고찰 > 은
학문의 조류 속에서 생명을 갉아 먹고 생명을 중독시키는 위험성을 백일하에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비인간화되고 메카니즘적인 톱니바퀴의 회전과
노동자의 몰개성, 분업 경제의 오류 속에서 생명이 얼마나 병들어 가고 있는가를 폭로한다. 진정한 교양이라는 목적은 상실되고 현대적인 학문
경영이라는 수단은 야만화되었다. 이 에세이는 금세기가 자랑하는 역사적 감각이 결국 하나의 병이며 전형적인 파멸의 징조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세째와 네째 < 반시대적 고찰 > 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교양의 개념을 회복시키고 보다 고양된
교양의 개념을 향한 지표로서 두 개의 상, 즉 지극히 힘든 것이지만 자기사랑과 자기도야가 제시되어 있다.
...
이영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