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 뭉크, 1906년작 Munch, Edvard 노르웨이의
화가. 국적 : 노르웨이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노르웨이 뢰텐 주요작품 :《생명의 프리즈》 《별이 있는 밤》
《백야(白夜)》
그를 기념비처럼, 그리고 장식적으로 그리기로 결심했다. 실제 내 눈으로 그를 본적이 없으므로 그를 실물처럼
보이도록 묘사하는 것은 나로서는 온당치 못하다고 했다. 나는 그를 차라투스트라의 시인으로, 즉 산들 사이의 그의 동굴에 있는 형상으로
묘사했다.
뭉크 Munch, Edvard 뢰텐 출생.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심한 이상성격자였으며,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여의고, 그 자신도 병약하였다. 그와 같은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풍에 영향을 끼쳤다. 오슬로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1881∼1884), 급진적인 그룹의 영향을 받았는데, 초기작품 《병든 아이》에서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응시는, 그 후의 작품에서
일관하고 있다. 1889년 한여름을 바닷가의 마을에서 보내고, 신비스러운 밤의 불안을 잡아 《별이 있는 밤》 《백야(白夜)》 등을
그렸다. 1890년 파리로 가서 레옹 보나의 아틀리에에 들어갔으 나 파리에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일본의 목판화(木版畵)와 피사로와
로트레크의 작품이 있으며, 고갱과 고흐의 매력이었다. 1892년 가을, 베를린미술협회전에 출품하였는데, 그것들은 초기의 애수 어린 서정적 성격을
더욱 내면화하고, 생(生)과 사(死),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여기서 뭉크의
독자적인 세계가 확립된 것이다. 게다가 베를린에서의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 깊이를 더하게 하였다. 그 후 파리에서는 말라르메 등과 사귀고
입센을 알게 되었으며, 명작 《생명의 프리즈》 연작(聯作)을 완성하고, 1894년부터 판화를 시작하였다. 1908∼1909년에는 신경병으로
코펜하겐에서 요양하였으며, 그 후부터 색채가 밝아지고, 문학적 심리적인 정감이 두드러졌다.
1937년 나치스는 독일에 있는 그의
모든 작품을 퇴폐예술이라 하여 몰수해버렸다. 만년에는 은둔생활을 하였다. 한편 판화가로서도 근대의 대작가이며 표현파의 선구자이자, 노르웨이
근대회화의 이재(異才)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밖의 《봄》 《질투》 《절규》 《다리 위》 《저녁시간》 《죽음의 방 The Death
Chamber》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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