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포 은갈치
심은섭
발목 묶인 뻐꾸기가 노예의 울음소릴 내는
102-808호 초인종이 울렸다
새파랗게 질린 우체부가 하얀 목관 하나 건네주고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졌다
성산포 앞바다에서 휘파람 불며 물질 하던
낯익은 해녀가 그 속에 누워 있었다
해파리처럼 풀어진 동공 속에 해바라기 씨앗처럼
용서가 가득 차 있는 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지축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
교만한 어망에 높은 족속의 비늘을 잃어버리고
나무도마 위에 앉은 그녀
탁탁탁 날카로운 칼날에 누구도 갖을 수 없는
귀족의 은빛 비늘이 잘리고 있었다
나무도마에 누운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나의 용기는
자루가 빠진 칼이었다
그가 저녁 밥상 위에서 닻을 내릴 때 나는
창백한 낯선 타인이 되어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삭은 뼈 한 조각이라도 뭍으로 갈 수 없다던 그녀
내 입 속이 무덤이 된 것을, 하지만 나는 수 십 알의
시간을 깨물어 먹어도 누구의 기억 속에 남을
은빛비늘 한 잎 갖고 있지 않다
누구 입 속이라도 들어가 무덤이 되어주지 못한다
무덤이 되어줄 입 하나 갖고 있지 않다 나를 낚아주던
성산포 앞바다, 지금은 그녀가 부재 중이다
그가 부재 중인 것이
바다의 상처인 것을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
날마다 상처를 입고 있는 그 성산포 앞바다
흰 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06년 <시평> 여름호
심은섭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강릉시 포남2동 청송 아파트 102동 808호
011-376-6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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