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매화, 흰 빛들

자크라캉 2006. 4. 5. 00:19
매화, 흰 빛들 | ┃ 다시읽는[詩] 2006/04/0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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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흰 빛들


전 동 균


뒤뜰 매화나무에
어린 하늘이 내려와 배냇짓하며
잘 놀다 간 며칠 뒤

끝이 뾰족한 둥근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서,
몸과 마음이 어긋나는 세상의
길 위로 날아가는
흰 빛들

아픈 生의 비밀을 안고 망명하는
망명하다가 끝내 되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저 흰 빛의
저 간절한 향기 속에는

죄 짓고 살아온 날들의 차디찬 바람과
지금 막 사랑을 배우는 여자의
덧니 반짝이는 웃음소리
한밤중에 읽은 책들의
고요한 메아리가
여울물 줄기처럼 찰랑대며 흘러와
흘러와

새끼를 낳듯 몇 알
풋열매들을
드넓은 공중의 빈 가지에 걸어 두는 것을
점자처럼 더듬어
읽는다


- '2000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중에서, 현대문학,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