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이루어지는 사랑
/ 차창룡
갠지스 강물 위에 불꽃 떠가네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아 흐르는 차가운 강물은
불꽃을 사랑하여 꼭 껴안아주고 싶지만
껴안으면 불꽃은 곧 죽고 만다네
뜨거운 햇살에 검게 탄 손으로 띄운 불꽃은
강물을 사랑하여 그 젖가슴 물고 싶지만
그러면 곧 죽고 만다네
강물은 불꽃을 데불고 흘러갈 뿐
불꽃은 강물이 가는 곳을 쫓아갈 뿐
마침내 불꽃이 수명을 다하면
강물은 그 시신 고이 안아
부드러운 젖가슴 물려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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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무 물고기} (문학과지성사, 2002/12)
죽음은
불화라기 보다 불화의 소멸이라야 마땅한데, 이 시에서는 죽어 장사를 지내는 최후의 순간까지 서로 끌어안을 수도, 젖을 물릴 수도 없는 불화가
계속된다.
살아서는 재물과 불화하고 죽어서는 갠지스와 불화하는 삶, 그러나 결국 인간이란 유장한 강물(역사)에 한 수레바퀴일 뿐
불꽃(소승적 역사)은 강물(대승적 역사)에 안겨들어 부드럽게 젖꼭지를 무는 것이다.
이 시도 여러 소리로 읽기보다. 그의 다른 시를 옮김으로써 짧게 읽기를 보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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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그(차창룡)의 시 [죽지 않는 나무] 전문 ==
인도의
알라하바드에 가면, 히말라야로부터 수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강가와 야무나, 그리고 사라스와티 여신이 동성연애하는 이른바 상감(sangam, 세
갈래의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곳이 있는데, 인도의 세 어머니 여신은 힘을 모아 자신들의 자가용인 악어와 거북이와 백조의 씨앗을 자신들의
자궁에 심었는데, 그곳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하늘의 푸른 바다를 향해 힘찬 줄기를 쏘아올렸으니, 이른바 '반야 나무'(banyan tree,
菩提樹)는 허리에도 뿌리를 달고, 어깨에도 팔에도 이마에도 뿌리를 달고, 뿌리를 수염처럼 쓰다듬으면서 몇 만년을 살아오니, 우주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밤마다 반짝이더라.
어머니
여신의 자궁에서 솟아나왔다 한들 생명 있는 것이 어찌 죽지 않을 수 있으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이 지혜의 나무는 살아 있을 때
스스로 무덤을 만들리라 생각하고, 지하로 지하로 무덤을 파내려가니 무덤을 파내려가는 팔과 다리에 크고 작은 우주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고,
성스러운 어머니인 물 속에 잠기기 위해 물을 향해 팔다리를 뻗으니 손가락 사이로 발가락 사이로 물고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알을 까고 집을
지으니, 나무는 물고기의 똥을 먹고 물고기는 나무의 똥을 먹고, 나무는 썩어가면서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는 썩어가면서 나무가 되고, 물고기로
변신한 비쉬누 신이 잠에서 깨어나니, 물 속에서도 땅 속에서도 우주가 함께 기지개를 켜더라.
태양의
신 수리야와 불의 신 아그니와 번개와 비의 신 인드라의 집에 나뭇가지가 뻗어가니, 그것은 어머니 여신들의 자애로운 손길이어서, 햇살이 나무가
되고, 불도 나무가 되고, 번개도 나무가 되고, 비도 나무가 되고, 7세기경 이곳에 온 당나라의 현장스님도 나무가 되어 한 그루 나무로서 이
나무를 '죽지 않는 나무'라 이름하니, 나무는 정말 꼼짝 못 하고 죽지 못할 팔자라, 죽기 싫은 사람들이여, 이 인도의 자궁에 와서 죽지 않는
반야(般若)의 나무를 껴안아보라, 불그죽죽한 페인트를 바른 축축한 지하사원에 내려가면, 죽지 않는 나무의 몸통이 있으리라, 나무의 몸통을
껴안으면 한 노인이 나무껍질 같은 손을 벌려 백 루피만 보시하라 하리니.
죽고
싶은 사람들이여, 지하에 지상에 물 속에 커다란 우주를 건설하고 있는 죽지 않는 나무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있나니, 동병상련의 정으로
이곳에 와서, 사람들 또한 휴대용 우주를 짊어지고 다니니, 휴대용 우주의 팔을 뻗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가지들을 껴안아보라,
가지들이 죽죽 솟아올라 싹을 틔우고 이파리를 틔우고, 새 가지는 헌 가지를 부러뜨리고 헌 가지는 새 가지를 먹어버리고, 그리하여 나무는 수없이
죽음으로써 살아 있는 것이니, 우리들도 우주인 나무의 한 이파리여서, 어차피 죽어도 이미 죽지 않는 나무여라. ===
시집 {나무 물고기} (문학과지성사, 200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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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룡
시인
1966년
전남 곡성 출생
조선대학교
법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문학과사회》(시)와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로 등단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민음사 1994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문학과지성사 1997
《나무물고기》
문학과지성사 2002
김수영
문학상(1993) 수상
현재
중앙대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21세기 전망’동인, 계간 《디새집》
편집위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