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수색역에서
김만년
1
언제부터였을까 물빛 곱다던 수색역은
거대한 공룡들의 습지로 변해 있었다
새벽마다 중생대의 눅눅한 바람이 음습해오는
기관고(機關庫)유전지대에는
등푸른 공룡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지상 오십미터 상공 조명탑에 촘촘히 박힌 공룡 알들,
일제히 부화(孵化)등을 밝히면
질척거리는 유전습지에서 불잠 자던 공룡들
허연 갈퀴 앞세우고 가르릉 가르릉 일어선다
하늘 어디쯤 플러그를 꽂고 송출신호를 보내면
공룡들은 일제히 백악의 울음 하얗게 내지르고
무쇠발톱 철거덕거리며 검은 침목철선을 따라 걸어나온다
직립의 원인들이 청 녹 깃발 펄럭이며
공룡들을 일일이 호명하면 한껏 가열된 공룡들,
긴 꼬리등창(窓)푸르릉 흔들며
철길 위에 일렬횡대로 늘어선다
웅웅 가속의 결의를 다지는 공룡들의 붉은 눈알 속으로
일순간 파란 불빛이 번뜩이는,
2
겨울, 수색역에는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다
용들이 뿜어낸 불티들 불야성을 이루며 날아올라
검게 그을린 밤하늘에 별빛으로 박히던 것
오래도록 보아왔다
날마다 3000마력 터보엔진 등푸른 기관차들을 출항시키며
순간 가속음 100데시빌의 굉음속으로 달아오르는 새벽,
눈썹 위에 달라붙은 졸음에 걸려 넘어지며
직립보행이 언제나 하늘 길처럼 아뜩했다며
시뻘건 조개탄 위로 끓어오르는 한 젓가락의 라면
달게 먹고
면발처럼 매콤한 힘줄로 새벽을 턱걸이하는,
만남과 헤어짐의 발원지,
난맥상으로 꼬인 철길
한 올 한 올 풀어
푸릇한 산맥으로
기차를 떠나보냈네
퇴행할 수 없는 숙명의 철길
뒤돌아보지 말자
생은 먼 기적울음,
철커덕 철커덕
붉은 산허리 돌아
간이역 어디쯤 머물러 있을
한 웅큼의 눈물과 그리움들을
집결시키고 분산시키는
水色, 물빛보다 고운
노동의 기지(基地)
*수색역:서울역을 거쳐 경부 호남선으로 출발하는 기관차들의 집결지,
밤새 정비를 하고 새벽이면 발차순서에 의해 기관차와 객차를
연결해서 떠나보내는 기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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