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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자크라캉 2006. 2. 21. 20:24

   붉은 수수밭/연용호

 

 

   수수꽃이 파하고 열렸다 최불암같다
 붉은 벽돌집 사는 여자 공리여,
 붉은 수수꽃 피는 날 만나 그곳에서 사랑을 나눴고
 그들은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붉은 수수팥떡하고 그 여자는 잘 어울렸다
 파하고 웃으면 붉은 수수알이 오소소 떨어져
 깨가 쏟아지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리고 껍질을 벗겨내면 마침내 하얀 속살을 뽀얗게 드러낸 그것이
 서방님하고 달려들 때
 파하는 웃음도 오냐 어디하고 놀라서 함께 날뛰었다
 매일 너무도 행복했다
 그래서 수수꽃 피는 때만 되면
 붉은 벽돌집 그 여자 공리는
 그 밭가에 나와 앉아 최불암처럼 파하고
 웃어줄 서방님만 기다린다

 

[심사평]

 

무려 1500여편의 작품이 들어 왔다. 단단하고 시적 긴장감을 주는 작품도 다른 해보다 많았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무게도 그만큼 중량감이 있다는 보증일 것이다.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책임감도 함께 갖는 일이다. 해서 좀더 좋은 시를 고르기 위해 어느 때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예선을 거쳐 마지막 당선 겨루기를 한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이혜순씨의 '그 동네는 지도가 없다'와 박금숙씨의 '씨앗', 김순미씨의 '홍역'과 '여우비 다녀간 뒤' 2편, 연용호씨의 '붉은 수수밭'을 두고 오래 토론이 벌어졌다. 모두 당선작의 역량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동네는 지도가 없다'는 시의 기본 틀을 잡는 데는 무리가 없었으나 이미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씨앗'은 "바람이 가는대로 모래에는 바람의 발자국이 찍혔다"라는 섬세한 표현으로 시를 농밀한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힘은 인정되나 전체적 함축력은 부족했다는 평가였다.

 역시 '홍역'과 '여우비 다녀간 뒤'도 끝까지 남아 맞겨루기를 했지만, 총체적 시적 함량으로는 시선을 끄는 작품이었으나 어딘가 미진하다는 결론이었다.

 짜임새가 있으면 내용에서 아쉬움이 있고, 시어의 특출한 효과를 누리는 재치가 있으면 전반적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붉은 수수밭'으로 결과가 났다. 시의 분위기가 밝고, 시어를 다루는 법이 능숙하고, 이미지의 단련이 돋보였으며, 매우 개성적이다. 다른 작품들도 가능성이 보이며, 앞으로 시작 생활에 신뢰가 있어 두 심사위원은 마음을 합쳤다.

 완전한 모범답안을 원하지는 않았고, 가능성의 믿음을 크게 점수 받은 것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좋은 시인으로 활약해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춘문예의 문을 나간 사람으로 빛을 내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종철ㆍ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