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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아내` / 심은섭 시인

자크라캉 2021. 2. 13. 09:56

  

 

 

    아 내

    심은섭


    얼굴은 하얀 목련이지만 뒷모습은 사월 초파일이다 나와 함께 한 방향으로 기관총을 쏘는 총잡이다 내가 마른 강물로 흐를 때면 기우제를 지내주는 제사장이고 대기권을 이탈하는 유성을 바라보며 서로 슬픔을 수혈하기도 했다

    때로는 통기타 1번 선의 C단조였다가 내가 어둠의 깃발로 펄럭일 때 푸른 새벽을 불러주었다 붉은 장미꽃이 지천으로 핀 5월이면 초병의 눈초리로 경계를 강화하지만 10월이 오면 어김없이 황금불상의 미소를 건네는 능금이다

    오랜 생의 전투로 사기가 저하된 패잔병인줄로 알았으나 탄알이 장전된 38구경 6연발 권총 한 자루였다 단단한 몇 개의 고독이 실밥이 터진 나의 정신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할 때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군가를 불러주는 전우였다

 

 

 

 

나의 노모는 평생 삼등완행열차로 살았다. 그 열차는 언제나 느림의 미학을 깨우치며 나의 어둠마저 걷어내 주었다. 새벽이면 기적소리와 함께 흔들리며 떠나는 그 삼등열차 이등석에서 나는 출생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러므로 나는 출생 번지가 없다. 그런 까닭에 국경이 없는 뭉게구름처럼 자유롭게 들판에 나가 궁서체로 바람소리를 받아쓰는 시인으로 사는 이유다.

 

 

약력
2004년 《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노량진으로 간 까닭』 외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외

 

 

-출처 : 2021년 2월 9일  ⓒGBN 경북방송에 게재

 

 

 
ⓒ GBN 경북방송 

김조민 기자 / 2021년 02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