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경주김씨 달안의 딸 - 심은섭

자크라캉 2014. 3. 12. 00:48

 

 

        <그림스크랩 >화가 이상원의 작품세계/수묵화 |한국작가 작품

 

 

 

김씨 달안의 딸 / 심은섭

   

그녀는

두 개의 밥통을 가지고 있다

 

명품이 아니다 스테인리스도, 고가 외제품은 더욱 아니다 그 밥통 속엔 단발머리 소녀의 푸른 초경과 포성을 기억하는 몇 권의 역사책이 꽂혀 있고, 경전을 읽는 창백한 부도수표와 가시나무새 울음소리가 단단한 한낮이 있다

 

그의 밥통은 밥통이다 이를테면 장작불을 지펴도 끓어 넘칠 줄 모르고, 세상 밖 바람소리가 아우성을 쳐도 실어증 환자로 산다 그 밥통은 밥통이 아니다 젖무덤에 사내아이 하나 묻고, 처음으로 눈이 큰 짐승처럼 포효했다

 

어두움 쪽으로 등뼈가 휘어지는 이 저녁, 밥통은 전쟁터에서 퇴역한 그믐달이다 헌 유행가를 부르며 몰려오는 매콤한 허무이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적막산골이다 신경 한 올 끊어진 뒷골목이다 아니다 온종일 숭배해야 할

 

나의

종교이다

 

 

 

2014<현대시>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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