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펠트덕담볼>님의 카페에서
숫자를 세다 / 천양희
숫자를 세는 것은 내 오래된 버릇
노선을 세고 계단을 세고 술잔을 센다
숫자를 세는 것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술잔을 내려놓듯 계단을 내려가듯
지독한 마음의 진동을 눌러 버린다
내가 대학생이던 60년대
아버지는 내게 60년대식으로 말씀하셨다
화낼 일 있을 땐 하나에서 열까지 세고
더 화낼 일 있을 땐 백까지 세어 봐라
그러면 불 같은 화도 절로 내릴 것이니
참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그때 불과 얼음을 생각했다
그때부터 생긴 숫자를 세는 버릇
세상 참는 방법이 되었다
오늘도 숫자를 세면서 생각한다
아버지의 방법에 비하면
내 버릇은 얼마나 사소한가
2010년《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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