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익숙하지만 낯선...>님의 블로그에서
연고를 바르며 / 김은자
연고를 바르다 보면 전생이 보인다 아주 먼 나라의 파편이
운석처럼 내 기억속으로 찾아온다
전생에서 나는 장님이었다 손 끝 하나만으로 우주를 읽어내렸던
맹인, 점자 해독은 일련의 볼록한 점처럼 피부 어딘가에 감촉으로
남아 있었다
깨알같은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내려 갔다
결국은 점칸 속 엉켜버린 암호에 미끄러져
어느 문도 내 손으로 열지 못한채 어머니 자궁을 빠져나왔다
패쓰월드 없이 여는 문은 늘 깨지고 부서져 찢어진 바코드,
세상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열쇠가 지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땐 이미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상처는 모가 나지 않은 말을 그리워했다
체온 있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세상을 점판처럼
읽고 싶어했다 연고를 바르고나면
상처 위에 노오란 진물
그것은 이제서야 착륙한 전생의 눈물
해독된 점자가 따스하다
<2008년 10월 30일 미주 중앙일보에 실림 >
[김은자]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상, 월간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 당선, 2005년 제7회 재외동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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