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이포나루 /박정수

자크라캉 2007. 10. 17. 10:36
 
 
                            사진<사단법인우리땅걷기>님의 카페에서
 
<제 2회 최치원 신인문학상 당선작>
 

 포나루  / 박정수


                                               

 

노을은 흐르는 강의 내력까지 잡아 삼켰다

백년 전

이곳의 흥정물은 소금이었다

굽이굽이 싱거워진 삶의 내력을 돋구는 데엔 소금이 제격이었다

때로 가뭄에 콩 나듯 오지 않는 기다림을 움켜쥔 채

몇몇은 쉽사리 불어나지 않는 강심을 애태우기도 하며

새벽 가까이 포구의 안쪽을 헤매었으리라

梨浦나루

東西간의 교류가 남한강을 묶어놓았던 곳,

상인들의 흥정은 멀리 장호원까지 들릴듯 끊어지지 않았고

내 가계의 내력도 그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저 강은 알리라


 

강은 거울이다

무수히 변화된 일상들을 비추며 희부연 기억 하나도 놓치지 않는,

오랜 세월

침묵의 깊이만 어루만지고 있는 강은 금이 가지 않는 거울이다

할머니의 손맛은 川西理를 낳았고

그 기억의 맛은 강을 따라 서해 어느 비린 항구까지 닿았음을

소금들의 내력은 거슬러 거슬러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젖은 강에 손을 디밀면 그때의 흥정소리 지금도 만질 수 있다

 

 

*이포나루 :소금이 교역되던 곳

 

 

 

<최치원 신인문학상 당선 소감>

 


                                                                                   박정수

 


폭염은 나의 흔들림을 무채색으로 돌렸다.


팔월에 받은 한 통의 전화에 땡볕처럼 숨이 막혀왔습니다. 시 쓰기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받은 전화, 자꾸만 소리가 멀어지듯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젠 더 이상 불 꺼진 방에서 울지 않아도 되겠지요. 메아리 없는 응모에 쓰인 지난날의 나의 이름들, 지금까지는 시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시의 힘이 되는 올곧은 선비의 정신으로 시심을 키우겠습니다. “안으로 숨 가쁘게 넘어가는 진공의 채널을 가져라” 하셨던 박경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금광저수지에서 쉽게 식어버리는 자판기 커피를 오래도록 비워내며 펼쳐 가던 시심을 언제나 한 발 늦게야 담아내던 모자란 저를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의 길이 멀었던 것처럼 스치는 얼굴 또한 많습니다. 부족한 문학의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시는 정제한 교수님, 슬픈 일, 기쁜 일, 늘 함께 하는 안성문학회 사랑하는 문우 여러분, 말 없이 뒤에서 지켜준 남편,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 아들 딸, 칠순이 넘은 부모님……. 모두 눈물입니다. 호흡이 늘어지고 있을 때 파장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초심의 자세로 가겠다는 다짐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삼년 전 세상을 떠나신 사랑하는 어머님, (故)한일심 여사께 이 기쁨을 올립니다.

 

 
약력: 본명 박혜정, 65년 경북 칠곡 출생

안성문학회 회원

경기도 안성시 당왕동 경남@ 209-1402

 

 

 

최치원 신인문학상 심사평

 


우리 시단의 새로운 등용문인 최치원 신인문학상에는 65분의 455편의 시가 응모됐다. 이는 양적으로 보아 시 전문문예지 투고 작품의 수준이다. 이들 작품 역시 지리산 문학회에서 예심을 보고 10분의 시가 모두 이름을 가린 채 본심에 회부됐다.

‘소리 미술관’‘김씨와 함께 늙어가는 것1’‘소설을 쓰다’‘눈이 부시다’‘143버스’‘아버지의 시계’‘딸꾹질놀이’‘에스컬레이터’‘강물형무소’‘이포나루’가 그 표제작들이다.

본심작품 수준 역시 시 전문 문예지 수준에 못지 않았다. 그러난 단 한 분의 신인을 모시는 자리여서 심사위원이 숙독하여 각각 1편씩의 작품을 정하기로 해서 ‘강물형무소’와 ‘이포나루’가 최종심에 남았다.

‘강물형무소’를 투고한 시편들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가작(佳作)이 많았다. ‘홍어’‘문상을 다녀오다’‘방파제 은하수’등이 그러했다. 특히 홍어의 경우, 만만찮은 입담이 출중했다. 시를 끌고 가는 힘에서 오랫동안 시와 싸워 온 저력을 읽을 수 있었다.

‘이포나루’는 단정한 시편들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제 자리에 놓여있는 깔끔함은 군더더기가 없는 서정시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이 역시 오래 씨를 다듬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강물형무소’는 보내온 시편에는 옥석이 섞여있었고, ‘이포나루’는 어느 한 편 나무랄 작품이 없어 완성도에서 앞선 ‘이포나루’를 최치원 신인문학상 당선작의 자리에 모셨다.

‘이포나루’는 좋은 시들이다. 5편의 작품으로도 시인의 목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문장을 절제할 줄 하는 힘이 시의 힘이 되고 대상을 보는 치밀한 시선이 시의 눈이 되고 있다. 최치원 신인문학상을 문학의 발판으로 삼고 더 높고 더 넓은 시로 나아가길 바란다.

당선하신 분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투고하신 많은 분들에게는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나는 좋은 인연이 있길 바란다.


심사위원 송수권 정일근(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