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횡성조씨일가>님의 카페에서
공화국의 모든 길은 / 김선우
대관령 관통고속도로 생긴후 돌개바람 심해지고 안개가 자주 낀다
아침 저녁 안개의 점령지를 뚫고 헤드라이트 군단이 달려 간다
안개는 도처에서 몰려오고 어디든 가는 무적이지만
대관령에 이르러 슬픔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구술한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 적으며 꽃을 뿌리고 안개는 다만 떠다닌다
발자국 내면 그 뒤로 더 많은 발자국 들끊을까봐
안개는 길을 내지 않는다 떠다닐 뿐
형상을 버린 세포만으로 새벽을 나부대면서
가장 오랜된 안개의 족속 중 현자인 족장 하나가 물파이프를 빨아올린다
옅은 기침을 할 때
쪼개진 손톱 속으로 안개의 혼이 스민다
저 길이 두렵고 아뜩하다 강릉을 향해 직선으로 내뻗은 고속도로로
영혼은 직선을 타고 오는 법이 없으니 저 물 아래가 황량하구나, 현자의
목소리가 젖어 있어 나는 꽃대신 잔기침을 하며 펜 끝에 침을 묻힌다
공중으로 날 듯이 이 같은 동해를 향해 내려가는 것 같지만
아니다 실은, 이 공화국의 모든 길은
서울을 향해 놓인 것이다
2006년 <문학사상> 10월호
<약력>
1970년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6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기를 거부 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등
2004년 詩 <피어라, 석유!.로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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