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맡겨둔 것이 많다」/ 정진규/ 《시작》 2004년 봄호

자크라캉 2007. 5. 5. 16:11

 

                                   사진<행운의 여신>님의 블래닛에서

겨둔 것이 많다 / 정진규

  세탁소에 맡겨 두고 찾지 못한 옷들이 꽤 여러 벌 된다  잊고 있다가 분실하
고 말았다  스스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 몸을 입히고 열심히 낡아가고
있을까  내 길이 아닌 남의 길 어디쯤을  어떻게 천연덕스럽게 나다니고 있을
까  그것들 말고도 내게는 맡겨둔 것이 많다  몇 해 전 일본 가고시마 공항 보
관소에 맡겨 두고 온 라면집 여자의 눈물도 있다  맡겨둔 것이 많다 지지난해
엔 내 아버지마저 하늘나라에 맡겨 드렸다  어머니는 훨씬 오래 전 30년이 넘
었다  나는 어느 것도 버리지 못한 채 유보의 짐을 지고 기다리라고 기다리라
고 늑장을 부리고 있다 내 삶의 후반부가 더욱 더디다 꼬리가 길다 오늘도 기
다리다 지쳐  삼삼오오 스스로 길 떠나고 있는 뒷등들  아득히  바라보면서도
나는 그런다

 

 

                                 2004년 《시작》 2004년 봄호